교양융합교육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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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최근 들어 대학교육에 있어서 교양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들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대학에 요구하는 사회적 수요의 반영 때문일 것이다.12세기 대학이 인류사에 등장한 이래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대학교육의 중심은 교양교육이었다. 중세를 거치면서 종교적인 영향 때문에 약간의 부침이 있기는 하였으나 소위 삼학과(문법, 수사, 논리)와 사학과(산술, 기하, 천문, 음악)로 불리는 자유교육은 대학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교육은 직업교육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그 목표는 생업을 위한 수단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을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이성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유연한 사고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즉 대학이 등장한 이래로 산업혁명을 경험하기 이전까지 대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교양교육을 통한 전인적 시민의 양성이었다.대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변화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사회는 산업의 발전에 필요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교육을 대학에 요구하였다. 오늘날 대학들이 자유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과 학문들을 교육하게 된 것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반영이었다. 산업사회가 지속되면서 대학교육은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분야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교양교육은 전문교육과 대비되는 것으로 일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수되면서 대학교육에 있어 부차적인 지위로 전락하게 되었다.그렇다면 오늘날 교양교육의 중요성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역시 사회의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화두는 지식과 정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현대사회가 산업사회를 넘어 지식정보사회로 전환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제 지식과 정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핵심적인 자원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를 효과적이고 창조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현대사회는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하던 전문화된 분과학문 중심의 지적 지형이 더 이상 그 유효성을 담보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제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파편화되고 자기고립적인 분과학문의 전문지식이 아니라, 그러한 지식을 아우르고 종합할 수 있는 융복합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인 것이다.교양교육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 시켜줄 수 있는 가장 근간이 되는 분야이다. 교양교육은 ‘교양’이라는 어휘가 주는 어감 때문에 우리가 가지기 쉬운 편견, 즉 지적 유희를 위한 과목, 배우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는 과목, 모자란 학점을 메꾸기 위한 과목이 아니다. 교양교육은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전에 기초가 되는 교육, 파편화된 지식을 종합적이고 창조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위한 창의적인 교육, 지식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비판적이며 도덕적인 교육 등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고 지식정보사회가 요구하는 바가 바로 그러한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늘날 교양교육의 중요성 다시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이다.교양교육은 그저 교양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살기 위해, 그리고 일반적인 지식을 함양한 전인격체로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임을 마음에 세겨야 할 것이다.<파라미타칼리지 교양기초교육부 교수 김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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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는 교양교육과 신입생의 역량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교육중점 대학으로서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교양교육을 전담하던 교양교육원의 조직과 인력을 확대 개편하여 2014년부터 파라미타칼리지라는 단과대학 체제를 출범시켰습니다. 우리 파라미타칼리지에서는 신입생들이 학교생활에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대학생’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스스로 공부하고 진로를 설계하며 우리 대학의 교육목표인 ‘참사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대학생활과 자기계발]이라는 대학생활 적응 교과목 교육과 더불어 신입생 개개인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체계적으로 대학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영어와 글쓰기 등 의사소통능력 증진을 위한 교과와 비교과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40여명에 이르는 원어민 교수들이 영어 회화교육을 전담하고 있으며, 인터내셔널라운지를 상시 운영하여 원어민교수와 학생들 간의 상시적인 접촉과 교류가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파라미타칼리지에서 운영하는 과정별 글쓰기 및 장르별 맞춤형 글쓰기 교과 프로그램과 온라인 첨삭지도 프로그램은 전국 대학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을 정도로 그 기능과 효율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 기숙사를 중심으로 정주대학인 RC(Residential College)를 운영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방과 후 활동도 독려, 지원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더 나은 교육 토대 구축을 위한 교․직원 및 동문들의 합심 노력의 결과는 우리 학교가 2015년 교육부의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일명 ACE사업)’에 재선정되는 쾌거로 이어졌습니다. ‘ACE사업’이란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010년부터 매년 일정 수의 대학을 선정해 4년간 지원함으로써 학부교육 선도모델을 창출 확산하기 위한 사업으로서, 2010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180여개 4년제 대학 중 총 32개의 대학이 선정되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2011년 1주기 ‘ACE사업’에 선정되어 2014년까지 4년간 100여억 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을 시행했으며, 그 성과를 인정받아 금년 2주기 재진입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지성과 인성, 감성을 두루 갖춘 ‘참사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우리 학교 교양교육의 목표입니다. 이것은 자비와 지혜를 통해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우리 동국대학교의 교육 이념을 구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ACE사업’ 재진입에 성공한 우리 학교는 지난 1주기의 사업성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교육 목표인 ‘참사람’ 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갈 계획입니다. 우리 파라미타칼리지도 학부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교육시스템의 개편이나 교육과정의 개선, 신입생 역량교육의 확대 등을 통해 더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파라미타칼리지 학 장 강 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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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목적 없는 사람은 키 없는 배와 같다(The person without a purpose is like a ship without a rudder.)”.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말이다. 토마스 칼라일의 표현 중 purpose는 ‘목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성취가 확실한, 어떤 일을 하는 이유로서의 purpose이다. 그런데 여기서 ‘목적(目的)’은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아마 이 ‘목적’을 ‘목표(目標)’와 헷갈려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목적’을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철학적 의미로, ‘실천 의지에 따라 선택하여 세운 행위의 목표’라는 정의도 함께 싣고 있다. 그렇다면 ‘목표(目標)’는 어떤 뜻을 갖고 있는 말일까? 사전적 의미의 ‘목표’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또는 그 대상’이다. 어떤가? 이렇게 보면, ‘목적’이 ‘목표’보다 범위가 큰 말이다.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은 여행의 ‘목적지’이다. ‘목표지’가 아니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갖고 여행을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일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거야.” 그리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목표들을 세운다. “오늘의 목표는 제일 싼 비행기 표를 사는 거야.” 이렇게 말이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번 글쓰기1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1학기 내내 주제, 목적, 독자의 중요성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만약 ‘정보를 전달하겠다.’란 글쓰기의 목적을 세웠다면,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은 목표들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겠어.’,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제일 새로운 정보를 찾겠어.’와 같은 목표들이다.이렇게 보면 ‘목적’한 방향으로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 ‘목표’들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목적’과 ‘목표’는 글쓰기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삶에서도 중요하다. 탐험가이자 작가, 그리고 강연자인 존 고다드는 그의 직업보다는 ‘The World’s Greatest Goal Achiever(세계 제일의 목표 성취가)’로 더 알려져 있다. 존 고다드는 1940년 15살의 나이에 127개의 꿈의 목록(My Life List)을 만들었다. 그리고 1972년까지 그 중 104개를 실현했으며 1980년에는 심지어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까지 이뤄 126번째 목표를 달성했다. 이후 2013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존 고다드는 계속해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존 고다드가 이렇게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며 살게 된 계기는 어릴 때 어른들이 하시던 말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OO했더라면”이 그것이다. 존 고다드의 일화 외에도 분명한 ‘목적’과 ‘목표’ 설정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이야기들은 많다. 그 중에서도 1953년의 예일대의 조사와 1979년 하버드대의 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1953년 예일대에서는 예일대생을 대상으로 “현재 당신은 구체적인 목표(golden list)를 글로 써서 갖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당시 3%가 목표를 글로 써서 갖고 있다고 했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20년 후 동일한 집단을 대상으로 그들의 삶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당시 목표가 뚜렷했던 3%는 나머지 97%보다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버드대의 조사도 예일대와 비슷하다. 하버드대에서는 1979년과 1989년에 하버드대학교 MBA 졸업생을 대상으로 목표 설정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1979년 당시에는 3%의 졸업생만 목표와 계획을 세워 기록으로 남겨 두고 있었고, 나머지 13%는 목표만 있었으며 그 외 84%는 확실한 목표와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10년 후인 1989년에 동일한 집단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다고 응답했던 13%는 나머지 84%보다 평균 2배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으며, 확실한 목표와 계획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던 3%는 나머지 97%보다 10배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물론 ‘부유함’이 인생의 목적이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단지 확실한 목적과 목적을 달성할 목표들이 인생의 여러 부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혹시 “그때 OO했더라면”이란 후회로 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곧 여름방학이 다가온다. 대학 신입생으로 학교 문에 들어선 지도 벌써 1학기가 다 되어 가는 것이다. 지금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목표들을 세워 실천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치 멋진 여행을 위해 세운 계획을 여러 번 점검하는 것처럼 말이다.“분명한 목적이 있으면 아무리 힘든 길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분명한 목적이 없으면 평탄한 길도 걷기 힘들다(The block of granite which was an obstacle in the pathway of the weak, became a stepping-stone in the pathway of the strong.).”<토마스 칼라일 Thomas Carlyle> 파라미타칼리지 글쓰기교육센터 안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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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는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나눠주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고 이야기 한다. 21세기 사회는 일방적 승리(zero-sum) 관계가 아닌 상생(Win-Win)관계를 통해 발전하는 세계인을 요구한다. 대학에 들어오면 경험하게 되는 사회봉사 활동은 21세기 사회의 주요 키워드 중에서 감동과 소통 그리고 공헌력을 확산시킨다. 대학의 사회봉사는 행동에 의한 학습(Learning by doing)으로, 강의실 중심의 학습이 아니라 현장학습이자 현장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학생이라는 특정 주체가 중심이 되어 봉사활동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일반인이 참여하는 자원봉사 활동과는 달리 봉사활동과 관련된 교과목 및 학점이수를 통해 대학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술을 사회에 적용하여 활용하는 경험학습(learning experience)으로 봉사와 학습의 효과를 동시에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대학의 사회봉사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발적 참여를 통한 배움(volunteer learning), 봉사대상자와의 만남을 통한 배움(encounter learning), 봉사대상자를 섬기는 과정을 통한 배움(service Learning) 등을 경험하게 한다. 봉사과정에서 경험하는 배움들은 대학생들의 사회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에 대한 소통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함께 공헌력을 증진시킨다. 영향력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선한 영향력을 공헌력이라 한다. 대학의 사회봉사 활동은 학생들이 공헌력을 강화할 수 있는 '나누려는 마음과 태도' 그리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공헌의 방법’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 그 자체로는 힘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 그것은 힘이 된다. 돈이 많으면 돈을 나누어 줄 수 있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아이디어를 나누어 줄 수 있고, 정보가 있으면 정보를 줄 수 있다. 봉사활동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재능을 기여할 수 있다. 기여하는 공헌이 깊을수록 감동도 깊어진다. 노자의 도덕경 7장에 “聖人後其身而先身(성인후기신이선신: 성인은 자신을 뒤에 세움으로써 결국 앞에 서게 된다”는 구절이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고 해서 앞서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앞서 갈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할 때, 내가 도운 그들을 통해서 더 크게 성공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공의 선순환’을 학습하는 좋은 기회가 대학의 사회봉사 활동이라 할 수 있으며, 21세기에 요구되는 참사람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파라미타칼리지 학사지도부 교수 최현실>* 우리대학은 대학의 봉사기능 확대를 위해 동국참사람봉사단,참사람재능나눔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사회봉사 교과목을 교양필수로 운영하는등 신입생 및 재학생의 다양한 봉사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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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급변하는 사회적 요구에 발맞추어 대학의 교육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고등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점점 높아지면서 대학은 보편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엘리트교육의 요람이었던 대학도 이제 앞다투어 인성교육을 포함하는 대중교육을 지향하는 교육체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적 요구는 그대로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스펙 목록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이제 대학생들도 전문적인 지식과 더불어 인성과 창의성으로 대변되는 교양을 겸비해야만 사회나 기업에서 제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대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한 대안으로 기숙형 대학(Residential College)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역사적으로 대중교육은 한 국가에 소속한 구성원 전체를 국가가 돈을 들여 집단적으로 교육시킨다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업혁명이 고도로 발전한 것과 그에 수반된 20세기 민족국가의 성립이후로 전개된 인류의 새로운 체험을 형식화한 것을 대중교육이라 부른다. 그 근거는 대중사회 즉 민주사회에 필요한 평균적인 가치를 보편화시키는 것에 있다. 예컨대, 지금은 초등학교로 부르고 있지만 한 때는 ‘국민학교’라는 명칭으로 불렀던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럼에도 민주사회에 필요한 평균적인 가치는 변함이 없다.그렇다면 민주사회에서 평균적 가치로 대변되는 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자유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한 측면만이 부각된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는 오직 성숙한 인간의 관계망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도덕이기 때문이다. 관계망의 형성은 자유에서 시작되지만, 형성된 관계망은 성숙한 인격들의 협력을 통해서 존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자유가 소극적인 가치라고 한다면, 협력은 적극적인 가치인 것이다. 이렇게 대중교육은 민주사회를 향유할 수 있는 ‘협력하는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당위가 도출되는 것이다. 이는 시대적 흐름이기도 한데, 오늘날 분과학문들이 융합해야 하고 전문화된 산업들이 융합해야 한다는 것도 이러한 협력의 요구와 맞닿아 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러한 당위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기에 분리된 것은 눈에 보이는 영토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나누어진 것은 우리들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조화로워야 할 우리의 정신이 이미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나누고 분리시켜서 보려는 시대적 광기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남녀가 나누어져 있고, 노소가 나누어져 있으며,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이 나누어져 있다. 이렇게 온통 나누어진 것 천지인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하지는 말자. 이것을 뒤집으면 우리는 지금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성숙해질 수 있겠는가?협력이 내면화된 것이 성숙이다. 또한, 성숙한 인간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며 나누어진 정신을 통일시키려고 하는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협력이다. 이렇게 협력은 실천적인 것이며 생활 속에서 체화되는 것으로, 대등하고 성숙한 인격들이 협조하는 방식이며, 곧 성숙한 인간의 마음이 된다. 이 마음들이 모여 우리 내면에 있는 인격의 공통분모를 형성하게 된다. 협력하는 마음과 성숙한 인격은 학습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삶 속에서 서서히 무르익으면서 체득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숙형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면, 학습공간과 생활공간을 통합함으로써 학생들에서 협력할 수 있는 기회, 자신의 인격을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라미타칼리지 RC교육센터장 안호영 >